" 치약 튜브가 반사시킨 작은별 같은 햇살 "
‘작은별 같은 햇살'이 바로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치약'이다.
할아버지는 아주 검소하셔서, 다 사용한 치약 튜브를 칼로 갈라서 안쪽에 남은 치약까지 깨끗하게 다 사용하셨다.
내가 열댓 살 무렵, 샘터에서 놀다 보면 치약 튜브는 햇빛을 받고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때는 그게 알루미늄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치약 튜브 안쪽은 반짝거리고 예쁘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욕실에서 다 쓴 치약 튜브를 보고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났고, 가위로 치약 튜브를 잘랐다.
치약 튜브는 생각보다 가위질이 잘 되었고 예상대로 튜브 안에 치약이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가른 치약에 칫솔을 쿡 찍어서 양치질을 했다. 오랜만에 치약을 과할 정도로 듬북 묻혀서 양치질하며 남은 치약으로 뭘 할까 생각을 했다. 치약의 특성은 '구강 청결'과 '구취 제거'이므로 '화장실 바닥 청소, 세면대 청소, 변기 청소, 실내화 바닥 닦기, 운동화 빨기' 이런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실내화 바닥을 닦아봤다.
" 와, 찰진 거품, 상쾌한 향기, 대단한 세척력! "
치약의 세척력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치약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너무 많았다. 대표적으로 치약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크게 세 가지의 활성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플루오르화물'은 인공 불소인데, 치아 우식을 예방하고 치아를 강화한다
'트라이클로산'은 항균 성분으로 치아와 잇몸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한다.
'페루오로 옥티논'은 항균성분 중 하나로 치아와 잇몸의 염증을 완화한다.
이러한 치약의 활성성분은 주로 구강 건강을 촉진하고 치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화학적인 물질로 장기간 노출된다면 환경 및 건강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사놓은 치약, 선물로 들어온 치약을 다 사용하게 되면 친환경 치약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친환경 치약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친환경 치약이라면 과연 치약을 담는 용기도 친환경적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튜브는 겉보기에는 플라스틱 같아 보이지만, 얇은 알루미늄층을 포함한 여러 가지 재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재활용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대부분 치약 튜브 겉면에는 ' 플라스틱 OTHER '로 표기되어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나는 그동안 플라스틱 OTHER 표기가 재활용될 수 있는 플라스틱에 대한 표기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사진에서처럼 플라스틱 글씨 외부에 삼각형 형태로 재활용 마크를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OTHER는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을 의미하는 표기이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OTHER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환경부의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상 플라스틱 재질은 일곱 가지로 구분한다.
( PETE, HDPE, LDPE, PP, PVC, PS, OTHER)
'플라스틱 OTHER'는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으로 PETE, HDPE, LDPE, PP, PVC, PS 여섯 가지 외의 모든 플라스틱 말한다. 두 가지 이상 플라스틱이 혼합되었거나 종이와 금속 등이 코팅된 복합 재질도 포함한다. 플라스틱 OTHER 제품은 원료 재질을 확인할 수 없고, 재생 공장으로 섞여 들어갈 경우 오히려 재생 원료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OTHER는 재활용할 수 없으니까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소각되거나 폐기물이 되어야 한다. 플라스틱인데 재활용할 수 없다니,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왜 치약 튜브 내부는 알루미늄 재질을 사용했을까?
알루미늄은 치약의 주요 성분인 플루오르화물과 상호 작용하여 치약의 안정성을 유지시키고,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치약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나 집에 있는 치약들을 확인해 보니 모두 플라스틱 OTHER 제품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 알루미늄 대신 플라스틱 튜브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 OTHER 제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차선책인 것이다.
쪼그라든 치약 튜브를 보고 할아버지의 치약이 떠올랐고 나도 치약 튜브를 갈라봤다. 남은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고, 슬리퍼도 닦고, 플라스틱 공부도 하고, 티스토리 글도 썼다. 비록 치약튜브는 재활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치약을 끝까지 깨끗이 사용하고 버리는 할아버지의 태도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치약 튜브를 갈라, 알루미늄이 반짝거릴 정도로 사용하시던 할아버지의 검소함이 오늘 더 빛나고 멋지게 느껴졌다.
아직도 난감한 게, 왜!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OTHER 제품에 삼각형 형태로 재활용 마크를 해 놓았느냐이다. 재활용 마크를 해 놓았으면 재활용하겠다는 것 아닌가? 플라스틱 OTHER 제품은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OTHER 제품의 재활용 방법을 개발하던지, 용기를 단일 재료로 만들던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재활용 마크를 해 놓고 OTHER는 일반쓰레기로 버리라고 하면, 앞 뒤가 맞지 않는다.